태안속풍경
태안속풍경4부 - 남면 원청리 별주부전 따라 걸어본다2018.03.13

2월 어느 날

아직은 볼에 닿는 아침공기가 조금 차지만 시골길을 따라 걷는 기분이 그저 상쾌하다.

소박한 시골 풍경에 빠져 걷다 보니 조금 다른 분위기의 높은 건물 하나가 서 있다.

입구로 들어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서해에서 가장 푸른 바다라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태안의 중앙부, 남면 하단에 위치한 한 원청리다.


#청포대해변
길목 곳곳에 서해바다의 절경과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바닥에는 소나무가 퍼뜨린 솔방울들이 가득하다.

공처럼 둥그스름한 솔방울들을 피해 걷다보니 한편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주민을 만났다.

[오지민 / 아나운서]
“안녕하세요. 지금 뭐하고 계신가요?”

[최성우 / 별주부마을 해설사]
“지금 독살에 물고기 들어왔으면 가서 잡으려고 그물을 손질하고 있어요.”

[오지민 / 아나운서]
“독살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독살이 무엇인가요?”

[최성우 / 별주부마을 해설사]
“독살은 말 그대로 돌 석자 해서 돌로 만들어진 그물이라는 뜻입니다. 그 안에 들어있는 물고기를 잡는 것인데요. 보시다시피 이 앞에 설치돼 있는 독살만 여러 개가 있어요. 그 안에 들어온 물고기를 잡는 것입니다. 어디에도 뚜렷한 근거가 없어서 옛날 어느 때부터 생겼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는 없는데, 추측으로 대략 조선 후기 150년 전에 힘센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지게로 돌을 가져다 쌓아놓고 물고기를 잡아다 먹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지금까지도 그 독살 안에 물고기가 들어와서 잡아먹고 있죠. 많은 양을 아니더라도 항상 반찬거리 할 만큼은 잡아요."

[오지민 / 아나운서]
“그럼 지금 가보면 물고기가 있는 건가요?”

[최성우 / 별주부마을 해설사]
“있을 거예요.”

[오지민 / 아나운서]
“저도 같이 체험해볼 수 있을까요?”

[최성우 / 별주부마을 해설사]
“네, 그러시죠. 같이 갑시다.”

물때를 기다려 독살에 걸린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는 주민, 장화를 신고 함께 따라가 봤다.

밀물 때면 250미터 정도 너비의 모래사장이지만 썰물 때면 4킬로미터의 조간대가 펼쳐지는 이곳.

‘마당같이 넓은 포구’라는 의미로 청포대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이곳에 큰 사구가 형성돼 있었다고 한다.

신두리사구 보다도 컸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먼 바다에는 거아도와 울미도, 삼도와 같은 섬들이 떠 있다.

그리고 그 보다 가까운 바다에는 독살이 있다

독살은 브이자 또는 초승달 모양으로 쌓아올린 돌담이다.

조수간만의 차이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전통 어로 방식으로 돌발, 돌살, 석방렴으로도 불린다.

[오지민 / 아나운서]
“와~ 아까 말씀하셨던 독살이 이 곳인 거죠?”

[최성우 / 별주부마을 해설사]
“네, 그렇죠. 보시다시피 이렇게 조상님들이 만들어 놓으신 거 보면 대단합니다. 간만조 시간을 맞춰서 브이자형으로 이렇게 만들어놓고 썰물, 간조시간 때가 되면 물이 마르도록 해놓으셨어요. 그러면 이 안에 들어온 물고기들을 잡는 거죠. 물이 너무 많으면 잡을 수가 없으니까 물이 조금 빠지면 이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거죠.”

[오지민 / 아나운서]
“오늘 몇 마리나 있을까요? 한 번 잡아볼까요?”

[최성우 / 별주부마을 해설사]
“오늘 운이 좋으면 한 마리 잡는 거고, 운이 나쁘면 못 잡는 거고~”

[오지민 / 아나운서]
“하하. 한 마리라도 잡으면 좋겠네요. 그럼 한 번 잡아볼까요?”

[최성우 / 별주부마을 해설사]
“그럴까요?”

[오지민 / 아나운서]
“네, 어떻게 해야 되나요?”

밀물에 휩쓸린 물고기가 독살에 들어오면 썰물을 기다려 퍼내면 된다.

돌로 만든 살이라 독살이라 하지만 어민들은 독 안에 든 쥐와 같아 독살이라 부른다고도 한다.

서해안은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서 독살을 설치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때문에 태안 일대에는 독살이 꽤나 많이 있었다고 한다.

[최성우 / 별주부마을 해설사]
“자~ 바닥에 그물을 대요.”

[오지민 / 아나운서]
“이렇게요? 오오~ 잡았어요! 잡았어! 어머!”

[최성우 / 별주부마을 해설사]
“그렇게 잡는 거예요. 숭어네. 숭어. 요즘 숭어가 잘 들어올 때죠. 숭어가 요즘에는 눈이 멀어요. 눈이 멀어.”

[오지민 / 아나운서]
“눈이 멀어서 저한테 온 건가요. 하하”

[최성우 / 별주부마을 해설사]
“날이 완전히 풀리면 그때 숭어가 눈을 뜨죠. 요새는 잘 잡혀요.”

[오지민 / 아나운서]
“아 그렇군요. 와~ 정말 신기하네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독살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물이 조금씩 들어온다.

그리고 다시 푸른 서해바다와 하얀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청포대해변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절경, 해안선의 굴곡, 해송과 철새들의 아름다운 광경이 조화를 이룬다.

모래사장은 하얀 카펫처럼 길게 놓여 있고, 모래만큼 많은 흰 조개껍데기들은 바다의 풍요를 보여준다.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갈매기 소리, 최고의 음악이다.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은 속까지 뻥 뚫어주는 기분이다.


#별주부마을
모래사장을 더 걷다보면 바위 하나가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덕바위 또는 자라바위라 불리는 이 바위.

마을 사람들은 용왕의 병을 고치려고 토끼를 찾아 육지로 올라왔던 별주부전의 자라라고 믿는다.

바위 위에는 충성심이 부족해서 토끼에게 속았다고 탄식하며 죽은 자라라는 설명이 새겨져 있다.

우화 속 내용을 보면 여기서 토끼는 자라 등에서 뛰어내려 ‘간을 빼놓고 다니는 짐승이 어디 있느냐’며 자라를 놀리고 노루미숲으로 사라졌는데, 그 이름을 따서 청포대는 노루미 해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을 담아 원청리는 또 다른 이름으로 별주부 마을이라고 불린다.


#용왕제
매년 음력 정월이면 이곳 별주부마을에서는 ‘용왕제’가 열린다.

용왕제는 바닷가 마을에서 행하는 의례로 지역과 마을에 따라 갯제, 용신제, 해신제, 풍어제 등으로 부른다.

별주부전 용왕에게 다시는 병환이 찾아오지 않도록 마을의 특산물인 참취나물로 떡을 만들어 제례를 지내고, 토끼와 거북을 통해 이 마을을 용궁에 소개한 계기를 감사하게 표하는 행사들이 펼쳐진다.

용왕제에서는 제례를 지내고 각자의 소원을 정성껏 적어 걸어두기도 하고 소를 잡아 꼬치구이를 해먹기도 한다.

그야말로 다함께 즐기는 마을 축제다.


#달집태우기
해가 지면 적어 둔 소원지를 잘 엮어서 ‘달집 태우기’를 준비한다.

불은 모든 부정과 악을 살아버리는 정화의 상징이라 달집태우기는 정월 대보름의 대표적인 민속행사이기도 하다.

달집에 불이 붙고 한동안 말없이 타는 달집을 바라보는 사람들. 그 속에서 함께 소원을 빌어보았다.

달집이 한꺼번에 잘 타면 풍년이 든다고 하는데 활활 잘 타는 걸 보니 올해 풍년이 오려나보다.

달집태우기에 이어 흥겨운 사물놀이가 이어졌다.

꾸밈없는 풍경에서 함께 어울리다보니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맺음말
논과 바다, 갯벌문화가 있는 원청리는 전형적인 우리의 농어촌 마을이다.

그 속에서 가치 있는 문화유산을 지키며 풍류와 해학을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

진정한 삶의 멋이 아닐까.

새해를 맞아 새로운 마음으로 걸어본 오늘.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마을사람들 마음속에 오래도록 간직되고 있듯이 나에게도 오늘 이 곳, 모든 풍경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